1. 고려사 기록

한자원문
薛景成, 鷄林人, 自言弘儒侯聰之後. 世業醫, 精其術. 初補尙藥醫佐, (1)累遷軍簿摠郞, 驟陞同知密直司事, 轉知都僉議司事致仕. 忠烈每?疾, 必使景成治之, 由是有名. 元世祖不豫, 遣使求醫, 安平公主賜裝錢及衣二襲遣之. 用藥有?. 世祖喜賜館?, ?門者時得出入, 至使圍碁於前, 親臨觀之. 留二年告歸, 世祖賞賜甚厚, 且曰, “得無念室家耶? 汝歸?家以來.” 景成還, 欲與妻行, 妻不可乃止. 未幾, 世祖召之, 自是數往還. 世祖遇之益厚, 前後所賜, 不可勝紀. 成宗寢疾, 又召之, 因留元. 忠宣受禪, 韓國公主妬趙妃, 誣妃父仁規罪. 元遣使鞫問, 以景成副之, 景成不與用事者通. 特加贊成事致仕, 卒年七十七. 景成身長美風儀, 性謹厚, 雖見知天子, 蒙幸國王, 未嘗爲子孫求恩澤, 亦不治産業. 子文遇登第, 官至成均大司成.
한글번역
설경성은 계림(?林) 사람으로 스스로 말하기를 홍유후 총(薛聰)의 후손이라 했다. ⇔ 薛景成, 鷄林人, 自言弘儒侯聰之後
妄想에 찌든 이들은 고려 중기 이후 慶州(鷄林)의 기록이 없다하나 사실은?
賢人景成은 당시 고려 조정의 중심 세력이 된 淳牌 일부에서 慶州를 넘어서기 위한 謀略모략을 꾸미면서 드러낸 子升 중시조 움직임에 (2)妄發망발임을 통렬하게 지적하여 고려사에 까지 鷄林人(慶州人), 子升 아닌 弘儒侯 薛聰의 후손으로 스스로 말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직업(世業)을 이어 그도 의술에 정통했다. 처음에 상약의좌(尙藥醫佐)에 보임되었다가 지위가 올라 군부총랑(軍簿摠郞)이 되고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로 빨리 승진했으며 지도첨의사사(知都僉議司事)로 전임한 후 벼슬에서 물러났다. 충렬왕은 병이 들 때마다 설경성(薛景成)을 주치의로 삼았으며 이로 말미암아 그의 명성이 높아졌다.
| 賢人의 관직은 시의侍醫 종6품(元세조 救病 위한 첫 파견) → 총랑摠郞 정4품 → 사사司事 종2품 → 찬성사(贊成事) 정2품 |
원나라 (3)세조가 병이 들자 사신을 보내어 의원을 수소문했는데 (4)안평공주(安平公主)가 설경성에게 여비와 옷 두 벌을 주어 원나라로 보냈다. 그가 처방한 약이 효험이 있자 세조가 기뻐하여 집과 곡식을 내려 주고 대궐 수문장에게 지시해 수시로 출입할 수 있게 했으며 심지어 자신이 보는 데서 바둑을 두게 하고 직접 나와 구경하기도 했다. 이태 동안 원나라에 머물다가 귀국을 요청하자 세조가 후하게 상을 내려주며, “집 생각이 아니 날 수 있겠는가? 돌아가서 가족들을 데리고 오라.”고 배려해 주었다.
설경성이 귀국해서 처와 함께 원으로 가고자 했으나 처가 반대하여 머무르게 되었다. 얼마 후 세조가 그를 다시 불러 이로부터 수차례 원나라에 왕래했는데, 세조가 어찌 후대했는지 그 동안 하사받은 물품이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였다. (5)성종(成宗)이 병들자 다시 설경성을 불렀으며 이후에 계속 이 일로 원나라에 머물렀다.
충선왕이 왕위에 오른 후 (6)한국공주(韓國公主)가 조비(趙妃)를 질투한 나머지 조비의 부친 조인규(趙仁規)를 원나라에 무고하였다. 원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국문하면서 설경성더러 보좌하게 했지만 (7)용사자(用事者)들과 통하거나 편을 들지 않았다. 나중 특별히 (8)찬성사(贊成事)를 역임한 후 퇴직을 허락받았으며 77세에 돌아가셨다.
설경성은 키가 크고 풍채가 멋졌다. 또 성품이 신중하고 후덕해 비록 천자와 국왕의 인정과 사랑을 받았어도 자손을 위한 (9)은택(恩澤)을 바라지 않았으며 또한 집안 살림살이도 돌보지 않았다. 아들 설문우(薛文遇)는 과거에 급제해 (10)성균대사성(成均大司成)까지 지냈다.
2. 한국학 중앙연구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실린 기록
[薛景成] 설경성 생애 및 활동사항
| 시대와 한 일 |
고려/후기(원나라 간섭기) 인물, 男, 의관(醫官) |
| 生과 卒 |
1237(고종 24)∼1313(충선왕 5) |
| 대표관직 |
상약의좌, 군부총랑, 동지밀직사사, 도첨의사사 |
신라 설총(薛聰)의 후예이며 대대로 의업에 종사하였다. 처음에는 상약의좌(尙藥醫佐)에 명하여졌으나 군부총랑(軍簿摠?)·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를 거쳐 도첨의사사(都僉議司事)에 이르렀으며, 충렬왕이 병환이 있을 때마다 그를 불러 치료하게 하여 더욱 유명하여졌다.
원나라의 세조(世祖: 쿠빌라이)가 병으로 고려에 의원을 청하였을 때 안평공주(安平公主)가 그들을 원나라에 보내어 치료하게 하여 효과를 보게 되었다. 세조가 기뻐하여 (11)관름(官?)을 내리고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게 하였으며, 그가 바둑 두는 것을 친히 보기도 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2년 동안 머물러 있다가 본국으로 돌아왔는데, 그 뒤 얼마 되지 않아 세조가 다시 불러 몇 차례 내왕하였으며, 그때마다 후하게 대접하였다. 그 뒤 원나라 성종(成宗)의 병으로 다시 원나라에 가서 머물렀는데, 관직은 찬성사(贊成事)에 이르렀다. 그는 신체가 장대하고 (12)풍의(風儀)가 아름답고 천성이 근후하며 제왕에게도 은혜를 구하지 않았다.
3. 中國醫學通史에 까지 기록
중국의학통사·고대권·八, 료하/금/원 시기의 의학
三. 조선과의 의약 교류
....조선도 중국에 의사를 파견하여 의료 활동에 종사한 적이 있다. 원 세조 22년(1296년) 3월 세조가 병이 들었으니 고려의 의술이 뛰어난 의사를 파견하여 치료해 달라 부탁하였다. 고려에서는 선후 두 차례 상약시의 설경성을 원나라 조정에 들어가도록 파견하게 된다. 원나라 황제의 병이 치료되자 원세조는 후한 상금을 내렸다. |
* 선후 두 차례는 고려사의 ‘數往還(수차례 오고 갔다)’는 기록과 차이가 있다. 아무래도 당시에 적은 고려사의 기록이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
4. 薛景成의 醫術(Syeol, Kyeongseong's Healing Arts)
◎ 1997년 대한한의학원전학회지 신순식 학술논문 초록
설경성(薛景成, 1237-1313)은 鷄林人이고 薛居伯을 始祖로 하는 慶州ㆍ淳昌薛氏의 33世孫이고 薛聰의 14世孫이다. 그의 아버지는 將作監을 지낸 薛公裕이고 할아버지는 景宗朝에 判中樞를 지낸 薛孝孫이다. 아들 薛文遇는 成均館大司成에 올랐다. 그는 世醫 집안이라 아버지ㆍ할아버지ㆍ아들도 의술이 남달랐으리라고 생각되는데 기록이 없어 자세히 알 수 없다.
설경성은 尙藥醫佐ㆍ尙藥侍醫ㆍ軍簿摠?ㆍ三司右使ㆍ同知密直司事ㆍ密直副使ㆍ知都僉議司事ㆍ資政院 副使 判大僕寺事ㆍ僉議贊成事 등의 관직을 역임한 것으로 보아 왕실의료를 담당하는 역할이외에도 고려와 元의 원만한 교류가 이루어지도록 외교가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하였다. 그의 인격은 후세에 본받을 만하다. 그는 인간적이었으며 왕실의 병치료에 언제나 최선을 다했던 고려와 元나라 왕실의료를 담당한 당시 최고의 의사였다. 또, 그는 부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가정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여 고려와 元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외교가로서의 역할도 보여준다.
그는 키가 크고 풍채가 있고 용모가 단정했으며 부지런하고 인정이 많았다. 높은 벼슬과 고려와 元나라 임금의 두터운 신임 속에서도 자만하지 않았고 또 자손을 위하여 혜택을 구하지도 않았으며 집안의 재산 늘리는데도 힘쓰지 않은 그야말로 公과 私를 구분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거기다가 자식교육도 소홀히 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史料가 부족하고 설경성의 저서가 전하지 않아 분명히 하는데 한계가 있지만, 설경성은 金元四大家사대가의학을 왕실의료외교를 통하여 고려에 들여왔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 영향은 미미했을 것으로 보인다. 元나라는 선진의 발전된 金元사대가의학의 꽃을 피웠음에도 불구하고 元나라 世祖(쿠빌라이, 재위 1260-1294)나 成宗(재위 1295-1307)이 병이 났을 때 元나라 의사를 마다하고 고려의 설경성을 초빙하여 효과를 보았다는 사실은 고려의술이 중국의학과는 다른 독자적이고 성과 있는 의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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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累遷누천.... 1. 여러 번 옮김. 2 . [같은 말] 누진1(累進)(1. 지위, 등급 따위가 차차 올라감).
2) 妄發.... 2」말이나 행동을 잘못하여 자신이나 조상을 욕되게 함. 또는 그런 언행. 妄言.
3) 世祖... 몽골의 칭기스칸 후예들이 세운 원나라 첫 번째 황제. 쿠빌라이 칸. 칭기스칸의 손자. 재위 1260~1294년
4) 安平公主.... 원나라 世祖(쿠빌라이)의 딸, 고려 제25대 충렬왕의 왕비. 충선왕의 母后
5) 成宗.... 쿠빌라이의 손자 원나라 2대 황제
6) 韓國公主....원나라 6대 眞宗의 누이, 고려 제 26대 충선왕의 왕후.
7) 用事者.... 권세를 멋대로 부리는 사람. 권력자. 부리는 사람
8) 贊成事... 고려 후기 僉議府첨의부(都僉議使司도첨의사사)의 정2품 관직
9) 恩澤... 은혜와 덕택. 인택(仁澤)
10) 大司成.... 성균관의 정3품 당상관직. 成均大司成은 현재 국립대학교 총장으로 포은(圃隱)정몽주(鄭夢周), 목은(牧隱)이색(李穡), 정도전 등 역임
11)관름(官?)...벼슬아치에게 주던 봉급
12)풍의(風儀)...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인상.풍채(風采), 풍신(風神)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