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굴사(骨窟寺)는 약 1500년 전에 인도에서 온 광유(光有)스님 일행이 창건한 사찰로서 암반전산(巖盤全山)에 마애여래불(磨崖如來佛 보물 제581호)을 조성하고 주변에 12개의 석굴을 파서 목조전실(木造殿室)을 구조한 전형적인 석굴사원(石窟寺院)이다.
조선시대 유명한 화가인 겸재 정선(謙齋 鄭敾)의 「골굴석굴도(骨窟石窟圖)」는 그 당시의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그러나 약200년 전에 화재로 소실되고 마애불과 석굴만이 남아서 인근 주민들의 기도처로 전해온 작은 암자였다. 1990년도에 기림사(祗林寺) 주지를 역임한 설적운(薛基俊, 시조로부터 66세손) 스님이 인연하여 20년에 걸쳐 중창불사(重?佛事)를 거듭한 뒤 지금은 대적광전(大寂光殿)을 비롯한 선원(禪院)과 요사(寮舍), 선무도 대학과 생활관 등 수많은 전각을 건립하여 대도량(大道場)으로 발전하였다.
기림사의 사적기(寺籍記)에 의하면 기림사의 전신인 임정사(林井寺)는 골굴사를 창건한 광유(光有)스님이 창건하였으며 200년이 지난 뒤 원효대사(元曉大師)가 크게 중창하여 사명(寺名)을 기림사(祗林寺)로 개칭(改稱)하였다고 한다.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학장을 역임한 이기영 박사의 논문에 의하면, 원효성사께서는 만년(晩年)에 기림사와 골굴사 등에서 주석(主席)하면서 인근의 감은사(感恩寺)를 창건했으며,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하는 원효스님의 입적지(入寂址)인 경주 인근의 혈사(穴寺)는 골굴사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여러 차례 세미나에서 발표한 바 있다.
적운(寂雲)스님은 1975년도에 부산 범어사(梵魚寺)로 출가하여 양익(兩翼) 대종사(大宗師)로부터 불교금강영관법(佛敎金剛靈觀法)을 전수(傳受)받아「선무도(禪武道)」란 이름으로 세속(世俗)에 포교(布敎)한지 어언 20년이 흐른 지금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한국불교전통수행법과 무예로 널리 알려졌으며, 선무도를 주제로 한 골굴사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은 이제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成長)하여 한국의 위상(位相)을 높이는 문화관광산업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연인원 3만 여명의 템플스테이 참가자 중 외국인만 2천명이 넘는 골굴사는 이제 1300여년의 시공(時空)을 넘어 원효성사의 일심(一心)사상을 전 세계로 펼치는 대승원력(大乘願力) 도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