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건설화는 송고승전(宋高僧傳)에 전하여 지는데 당시 동래 척판암에 주석하시던 원효성사께서 당나라 산서성 태화사에 수도하던 천명대중이 뒷산이 무너져 위급한 사고를 당할것을 미리 아시고 "해동원효 척판구중(海東元曉 拓板救衆)"이라고 판자에 써서 태화사 상공에 날아다니게 했다. 대중이 공중에 뜬 판을 보고 놀라 일주문 밖으로 나온 순간에 산사태가 나서 절은 무너져 버리고 대중은 모두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
그 후, 구출된 천명의 대중은 도를 구하여 성사를 찾아왔으므로 성사는 그들을 데리고 머물곳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중방리(지금의 용연리)를 지날적에 원적산(圓寂山) 산신령이 마중 나와 "이 산에 천명이 득도할 곳이니 청컨데 이 곳으로 들어와 머무소서" 하니 성사는 산신령이 인도하는 바를 따라 지금의 산령각 입구 까지 온 즉 원적산 산신령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산령각을 짓게되어서 유독 내원사 산령각은 큰절에서 5리 밖에 떨어져 있게 되었다.
성사께서 왼쪽 계곡을 따라 들어와서 대둔사(大屯寺)를 창건하고 상, 중, 하 내원암과 아울러 89개의 암자를 창건하시어 천명의 대중을 머물러 수도케 하였다.
그리고 대중을 산 상봉에 모이게 하여 "화엄경"을 강설하였으므로 지금도 그곳을 화엄벌이라 하며,988명이 이 산에서 득도하였고 나머지 12인중 8명은 팔공산(八公山)에서, 4명은 사불산(四佛山)으로 가서 도를 깨달았다하여 이후로 원적산을 천성산(千聖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창건 후 고려시대의 사적은 전하는 바가 없다.